‘만약 당신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인데, 그 동안 딴지일보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나 딴지일보 사이트에 가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인터넷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 말은 약간 억지 같은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나, 딴지일보가 기존의 매체들과는 차별화 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대안 미디어임을 강조하고 싶어 한 말이다. 조선일보의 패러디 사이트인 디지털 딴지일보는 98년 7월 4일 처음 개설된 뒤 99년 5월까지, 11개월만에 조회수 850만을 돌파한 이제 인터넷상에서 기존의 그 어떤 신문이나 잡지보다 더 유명한 초특급 인기 사이트로 자리잡았다.
내가 이 딴지일보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웹 서핑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추천 사이트로 링크 시켜 놓은 것을 따라갔다가 알게 된 경우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인트로 화면에 있는 다소 튀는 소개말을 보고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없다던데 여기도 사람들 시선 끌려고 말만 요란하지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곳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본 페이지에 접속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마음은 싹 바뀌고 말았다. 수준 높은 패러디와 송곳 같은 풍자로 가득한 이 신문은 나를 잠시도 쉬지 않고 웃게 만들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공허한 웃음이 아닌 막힌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신나는 웃음으로 말이다.
나는 곧 친한 사람들에게 멋진 사이트 하나를 알았다, 이건 정말 물건이다, 캡 좋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메일을 돌렸고 내 홈페이지에도 당장 링크를 시켰다.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곳을 나만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 딴지일보의 접속건수는 100만, 200만을 거뜬히 넘어서고 갑자기 각종 언론에서 딴지일보의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이 신문의 발행인 겸 총수인 김어준에 대한 소개와 인터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흔한 말로 뜨기 시작한 것이다.
김어준을 대략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올 해 32세로 삼수 후 들어간 대학 1학년 때,마음을 비운 뒤 공부에 몰두하기 위해시작한 해외여행이 3년 동안 이스라엘, 이집트 등 40여 개국을 돌았고 95년 홍익대 전기전자학과를 졸업한 뒤, 포항제철 해외 영업부에 근무하다 재미없는 것은 죄악이라는 자신의 인생철학에 따라 재미없는 직장을 6개월만에 그만두고 컴퓨터에 여행정보를 띄우는 IP사업을 했다. 이후 이벤트 사업도 벌였고 입양아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기획물을 제작해서 케이블 TV Q채널에서 기획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한 마디로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약간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어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처럼 특이한 그의 과거이력만큼 다양한 화제와 읽는 재미가 물씬 풍기는 딴지일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2. 딴지일보의 기득권 길들이기
국문과에 갓 입학했던 대학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순수 서정시야말로 문학의 본령(本領)이자 정수(精粹)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박남철이라는 시인의 시를 하나 읽게 되었는데, ‘독자놈들 길들이기’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을 가진 수상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였다. 그 시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 차렷, 열중쉬엇, 차렷./이 좆만한 놈들이....../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OO, 차렷, 헤쳐 모엿!/이 좆만한 놈들이....../헤쳐 모엿./(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엉?)/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고정관념을 깨고, 전혀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시가 가진 약간은 고상한 속성을 송두리체 해체시키고 파괴해버린 그 시는, 나에게 이후 새로운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하나의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 나는 딴지일보를 처음 보고 나서 불현듯 박남철 시인의 ‘독자놈들 길들이기’가 생각났다. 그만큼 틀에서 벗어난, 기존과는 차별화 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폼잡거나 돌려대지 않는 솔직함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제 왜 딴지일보가 새로운지 어떤 면이 우리들에게 시원한 감동을 주는지 살펴보자.
“살다보면 똥침을 찔러야 할 때가 있다. 딴지는 똥침 찌르고 싶은 세상의 많은 것들에 정확한 방향을 잡아, 비겁하지 않게 두 손으로, 적당한 깊이까지 푸욱... 찌른다. 설령 손 끝에 가끔 건데기가 묻어나더라도... 딴지가 갈 길이다.” 다소 지저분한(?) 느낌을 주지만 이 글은 딴지일보가 규정한 ‘딴지가 걸어갈 길’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딴지일보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과 부조리한 현실비판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그 대표적인 기사로 ‘우뚝 서라 좃선이여!’, ‘김대충 영문법 자습서 발간’, ‘고액 과외사건 진상을 밝힌다’, ‘이헤창 일병을 구출하라!’ 등 주로 정치․사회면 기사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비아그라는 원래 우리의 것이었다‘, ‘변태를 몰아내자’, ‘마징가Z에 관한 고찰’, ‘영화속의 구라들’, ‘극비실험, 헌팅의 세부기술’ 등 약간은 현실비판과 동떨어진 그러나 일상 생활 속에 쉽게 다가오는 B급 오락영화 수준의 기사들도 양념처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런 기사들이 그냥 고만고만한 ‘이 나쁜 놈들, 정신차려라!’ 수준이라거나 조금은 허황된 어설픈 웃기기 수준이라면 딴지일보는 그렇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딴지일보는 그런 3류 수준을 훨씬 벗어나 있다. 김어준이 따로 남다른 문학공부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딴지일보에는 사실주의와는 다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풍자가 살아 숨쉰다. 딴지일보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보면 부조리한 현실의 한 단면을 풍자하는 언어의 굴곡 현상이 심한데 그 용어와 단어 선택, 표현 방식을 보면 웬만한 문학인 뺨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어렵다거나 고상한 척 하면서 뭔가 폼잡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이런 풍자와 비판의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재 우리 나라의 가장 강력한 권력 언론집단인 조선일보는 딴지일보에서 동네 생활정보지 ‘좃선벼룩’ 또는 ‘좃선일보’로 불린다. 조선일보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나, 김대중주필이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용해 쓴 근거 없는 정책과 예측 불가한 인기주의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라는 내용의 칼럼은, 이 내용들이 완벽한 짜집기로 날조된 것이라는 것을 원문들과의 비교를 통해 소상히 그리고 친절하게 밝혀준다. 그래서 딴지일보는 조선일보를 향해 ‘이 색덜 정말 악질이다’라고 대놓고 욕을 하기도 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논객 김대중 주필은 ‘관련없는 단어 끌어와 뒤집어 씌우기, 없는 단어도 명상을 통해 맹글어내기, 문장 뜻과 정반대로 결론내리기’ 등 영문법의 신기원을 이룩한 ‘性門지조때로영문법’을 발간한 구라주필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지금은 국가정보원으로 바뀐 서슬 퍼런 안전기획부도 완전기술부로, 엘리트들만이 모인 우리 나라 제 1의 대학으로 불리는 서울대학교는 ‘커닝페이퍼 작성 및 사용법, 독심술, 투시술, 점성술’을 교과과정으로 하는 ‘쪽집게과외학과’를 신설할 예정에 있는 웃기는 학교로 그려진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평화를 위해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에게 패션 빤스를 전해주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이회창이 임신한 모습과 조순이 스모선수로 데뷔한 합성 그림은 얼마나 정교하면서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잘 꼬집어냈는지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근엄하고 당당하기만 해 보이는 이른바 우리 사회의 주류들도 이 곳에서 만큼은 더없이 우습고 어처구니없는 존재들로 화끈한 변신을 한다. 박남철의 ‘독자놈들 길들이기’처럼 기득권을 향해 “이 좆만한 놈들이......”하며 욕을 하고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기합을 주며 기득권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딴지일보는 새롭고 신선하다.
풍자는 인간의 약점, 사회의 부조리, 비논리 같은 것을 조소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이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과 비판이 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공격성이 딴지일보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의 똥침 정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반인들이 손에 건데기가 묻을까봐 아니면 똥침 한 번 잘못 놨다가 돌아 올 불이익과 보복 때문에 쉽게 하지 못하는 그런 더러우면서 용기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류에 날카로운 펀치를 날리는 공격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850만을 넘는 접속건수가 증명하는 딴지일보의 인기는 충분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과 연결 지을 때에야만 비로소 잘 설명될 수 있다.
3. 우리 사회의 놀부들, 딴지일보가 뜨는 이유
판소리 '흥보가' 완판본을 보면 놀부에 대해 묘사한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동네 주산을 팔아먹고, 일년고로(一年苦勞) 외상 사경(私耕) 농사지어 추수하면 옷을 벗겨 내어쫓기, 불붙은 데 부채질, 소경 의복에 똥칠하기, 잠든 놈에 뜸질하기 곱사등이 잦혀놓기, 걸인 보면 자루 찢기, 애 밴 계집의 배통 차고 우는 아이 똥 먹이기, 급주군(急走軍) 잡고 실랑이질, 만만한 놈 뺨치기와 고단한 놈 험담하기, 소목장(小木匠)이의 대패 뺏고 도적의 끝돈 먹기, 곡식밭에 우마 몰고 귀먹은 이더러 욕하기와 소리할 때 잔말하기, 날이 새면 행악질 밤이 들면 도둑질을 평생에 일삼으니 제 어미 붙을 놈이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굳기가 돌덩이요 욕심이 족제비라 네모진 소로로 이마를 비비어도 진물 한 점 아니나고 대장의 불집게로 불알을 꽉 집어도 눈도 아니 깜짝인다." 이것은 일부분일 뿐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식을 초월하는 놀부의 악행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 놀부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정상이 아닌 비뚤어진 힘있는 자, 가진 자들이 많다는 말이다. 사실, 권력 가지고 있고 돈 있는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가졌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을 잘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아무 대책 없이 날아든 구제금융체제, 극심한 경기불황, 밥을 굶고 사는 사람들, 돈을 타내려 다른 사람의 묘를 도굴하고 자해를 하는 사람, 한창 열심히 일할 나이에 거리로 쫓겨난 실업자들, 아무런 비전이 보이지 않는 실망스러운 정치 행태들... 누구 말마따나 6․25 이후 최대의 국난에 처한 상황이라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힘없는 일반 국민과 약자들만 이 어려움을 감내하게 되어 있다. 정작 고통받고 철저히 반성해야 할 놀부들은 별 상관없이 계속 기득권을 유지한 체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 전반에 부조리한 모순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어떤 메이저 언론도 이런 현실을 속시원하게 비판하며 잘못된 걸 고치자고 하지는 않는다. 광고와 정치, 대기업들과 유착관계에 있는 기존 언론들은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실천하려는지, 아니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이 박힐까 두려워서 인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있거나, 기껏 한다는 것이 나무 젓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니들 똑바로 해!’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흥부들은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자신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줄 언론이 그리웠을 터인가. 김어준은 전문적으로 언론을 공부한 학자나 기자도 아니지만 이런 욕구를 잘 감지해낸 사람이고, 그의 글들에는 무엇보다도 보통 사람들이 공감하는 진실이 담겨 있기에 그가 만든 딴지일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4. 김어준과 딴지일보의 생명, 인터넷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딴지일보가 선택한 존재방식과 전문성이다. 신문사는 그 진입장벽이 높다. 대당 1000억이 넘는 윤전기와 사옥, 300-400명에 이르는 고급인력과 그 유지비... 한 마디로 엄청난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딴지일보는 인터넷을 그 기반으로 한다. 1000억이 넘는 윤전기도 필요 없고 딴지일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웹페이지를 만드는 언어인 ‘HTML 윤전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사옥도 필요 없이 그냥 집에서 할 수 있고 인터넷상에서 주소 하나를 가지고 웹호스팅을 하려면 컴퓨터와 모뎀 그리고 달마다 돈 몇 만원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 들었다고 해서 기존의 인터넷 신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인터넷상에서는 조선일보라고 해서 3-4개의 주소를 가진다거나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고 www.chosun.com이라는 하나의 주소를 가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딴지일보도 조선일보처럼 ddanji.netsgo.com이라는 주소 딱 하나를 가진다.
문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웹상에 있는 기존의 인터넷 신문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조선일보, 마이다스 동아일보뿐 아니라 다른 여타의 인터넷 신문들 모두 일반 종이 신문의 복사판에 불과한 수준이다. 반면에 딴지일보는 어떠한가?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넷 신문’의 톰 베이커는 인터넷신문 유료화와 관련지어 그 조건을 확실한 개성을 가진 인터넷 신문만의 편집경향, 속보성, 종합정보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부가서비스 시스템, 심층적인 온라인 기사의 내용을 들고 있는데 딴지일보는 여기에 부분적으로 접근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딴지일보는 그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다. 이쪽 저쪽 적당히 때리는 양비론에서 벗어나 일반 신문이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해결사의 관점에서, 때에 따라 확실한 편들기로 사회 현안에 대해 기존 언론의 보도와는 확실히 다르게 전달해준다. 또한 자발적으로 지원한 300명이 넘는 국내외 쟁쟁한 전문기자들이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색다른 정보들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누가 어쩌고 저쨌다더라가 아닌 그 이면에 담긴 음모와 속셈들을 심층보도로 까발리면서 비꼬는 기술은 그와는 상극인 조선일보의 자기들 원하는 대로 자르고 붙이기 기술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들은 가끔씩 ‘아니, 이런 것까지!’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세련된 그래픽과 다양한 메뉴들이라는 것이다. 주로 사진합성으로 제작되는 그래픽들은 어설픈 아마추어 티가 나지 않고 그 아이디어가 독특해 독자들의 시선을 확실히 붙잡는다. 거기에다 대화방, 영화관, 만화방, 패러디 광고, 신인 인터뷰 등 다른 인터넷 신문과는 확실히 다른 메뉴들이 부가 서비스로 제공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대부분이 다 김어준이라는 원맨시스템에 의해 돌아간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한 개인이 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규모가 작은 지방지라 할 지라도 힘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김어준이 1인 신문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딴지일보가 인터넷을 그 존재 기반으로 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터넷이 없었다면 딴지일보와 김어준은 없었다’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다.
5. 새로운 대안매체를 꿈꾸며
이제 인터넷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더 가속화 될 전망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에서 기존의 제도화된 언론과는 다른 하나의 새로운 대안 언론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를 힘차게 펄럭여야 잘 날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동안 두 날개가 아닌 한 쪽의 날개로만 날아 온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도 한 쪽 날개에만 의존해서 날다가 추락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느 한 쪽의 획일화된 가치와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발전도 없고 어느 한계에 이르면 스스로의 모순으로 퇴보하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런 혼란과 모순의 시기에 딴지일보가 새로운 한 쪽 날개의 역할을 해내는 시발점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신문사의 발행인이자 총수인 김어준은 스타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 건전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기득권층을 올바르게 길들이는 대안매체로 그리고 때에 따라 굳기가 돌덩이 같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우리 사회의 놀부들에게 시원한 필살의 똥침을 날리는 그런 딴지일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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